1000배짜리 마지막 한 폴에서 터진 썰
창작썰임.
1000배짜리 마지막 한 폴 남기고 터지는 상황 있잖아. 남 얘기로 들으면 그냥 아깝네 하고 마는데, 그거 기다리는 사람 머릿속은 얼마나 개판일까 싶어서 써봄.
앞에 것들이 하나씩 맞을 때까지는 나도 별생각 없었음. 어차피 중간에 하나 틀리겠지 싶어서 밥도 먹고 딴 것도 보고 있었거든. 그런데 확인할 때마다 끝난 경기 옆에 표시가 하나씩 붙어 있는 거임. 처음에는 오 하다가 나중에는 잠깐만, 이게 왜 아직 살아 있지 싶어짐.
마지막 경기 하나 남았을 때부터 사람이 달라짐. 아까까지 단톡방에 쓸데없는 소리 하던 놈이 갑자기 말이 없어짐. 누가 뭐 보내도 알림창만 보고 내려 버림. 답장할 손은 있는데 괜히 딴 데 정신 팔면 안 될 것 같았음. 내가 집중한다고 경기력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혼자 코치가 됨.
필요한 건 이기는 거였고 보고 있는 점수는 1 대 0. 숫자는 단순한데 시간이 존나 안 감. 평소에 영상 하나 보면 순식간에 날아가던 십 분이 여기서는 한 시간 같음. 분명 방금도 시계 봤는데 아직 같은 분임. 초 단위로 뜯어 쓰니까 시간이 이렇게 많구나 싶더라.
물 한 잔 가지러 갈까 하다가 멈춤. 내가 자리 비운 사이에 뭐 생기면 평생 물컵 원망할 것 같아서 그냥 앉아 있었음. 휴대폰 배터리는 넉넉한데 충전기까지 꽂음. 오늘만큼은 기계 탓할 여지도 없애겠다는 쓸데없는 비장함이 있었음.
후반 막판에 우리 쪽이 공 잡으면 숨이 좀 쉬어지고 상대 쪽으로 넘어가면 바로 몸이 앞으로 쏠림. 그냥 옆으로 주면 될 것 같은데 굳이 앞으로 보내다가 뺏기니까 혼자 중얼거림. 아니 지금 멋있는 거 하지 말고 그냥 좀 갖고 있으라고. 방 안에 나밖에 없는데 말은 점점 많아짐.
그때부터 이미 돈이 들어온 사람처럼 생각하기 시작함. 이거 끝나면 뭐부터 할지 순서까지 정함. 처음엔 믿으면 안 된다고 눌러 놨는데 남은 시간이 줄어드니까 자꾸 풀림. 아직 끝난 게 아닌데 마음속으로는 벌써 결과 화면 캡처해서 누구한테 보낼지 고르고 있었음.
한 번은 상대가 골 넣은 줄 알고 심장이 내려앉았는데 오프사이드였음. 화면에 다시 1 대 0이 보이니까 그제야 숨이 나옴. 여기서 기분이 더 이상해짐. 한 번 살았다고 이제 진짜 되는 날인가 생각함. 위기가 지나간 거지 당첨 도장 찍어 준 게 아닌데 혼자 그렇게 받아들인 거임.
정규시간 끝나고 추가시간 뜨는 순간 욕부터 나옴. 아니 이 시간은 대체 어디서 가져왔냐고. 평소에는 경기 끊기면 추가시간 줘야지 하던 놈이 이날은 시계 빨리 가라고 빌고 있음. 공이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제발 천천히 가져오라는 생각부터 듦.
얼마 안 남았을 때 상대가 코너킥을 얻음. 여기서부터는 화면을 똑바로 못 보겠더라. 안 보면 더 불안해서 다시 보고, 보면 심장이 뛰어서 폰을 조금 내리고. 그 몇 초 사이에 자세를 세 번은 바꾼 것 같음. 공 하나 올라오는 게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냐.
첫 공은 걷어 냄. 그래서 끝난 줄 알았음. 진짜 딱 그 순간에 몸에 힘이 풀렸는데 밖으로 완전히 나간 게 아니라 상대 발 앞으로 떨어짐. 다시 올라온 공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, 잠깐 화면이 복잡해지더니 점수가 바뀜.
1 대 1.
욕도 바로 안 나왔음. 그냥 폰 보고 있었음. 오프사이드인가 싶어서 판정만 기다렸는데 아무 일도 안 생김. 선수들은 가운데로 걸어가고 화면에는 계속 1 대 1이 떠 있음. 아까 오프사이드로 한 번 살았던 장면이 괜히 생각나서 더 멍해짐.
남은 시간 동안은 사람이 아니라 새로고침 버튼이 됨. 화면 닫았다 열고 결과 창 갔다가 다시 돌아옴. 다른 화면으로 보면 점수가 다를 리가 없는데 자꾸 확인함. 눈앞에서 똑같은 숫자가 뜨는데도 혹시 취소됐나 하는 생각을 못 버림.
종료 뜨고 나서야 소리가 나옴. 큰 욕도 아니고 그냥 하 씨발 한마디. 계속 긴장하고 있었더니 어깨가 아프고 물도 못 마셔서 입이 말랐음. 한동안 붙잡고 있던 휴대폰은 뜨끈한데 화면에 남은 건 마지막 경기 옆 표시 하나뿐임. 앞에 맞은 것들이 줄줄이 있으니까 더 보기 싫더라.
웃긴 건 누가 내 돈을 가져간 것처럼 기분이 든다는 거임. 1000배가 내 통장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머릿속에서 먼저 받아 버린 거지. 그래서 막판 골 하나가 돈을 뺏어 간 것처럼 느껴짐. 실제로는 끝까지 안 된 건데 이미 쓸 곳까지 정해 놔서 혼자 취소할 게 많았음.
친구한테 한폴낙이라고 보낼까 하다가 말았음. 어차피 한마디로 설명하면 그 사람한테는 그냥 아깝네 세 글자로 끝날 일임. 내가 방 안에서 시계 보고 물컵도 못 가지러 간 시간까지 설명할 수는 없잖아. 쓰던 메시지 지우고 화면 껐음.
폰 던지고 싶은 생각은 잠깐 들었는데 그 와중에 수리비는 계산되더라. 1000배는 못 먹었어도 액정값까지 날릴 수는 없어서 소파에 아주 얌전하게 내려놓음. 사람이 끝까지 미치지는 않는다는 걸 그런 데서 확인함.
한참 뒤에 물 마시러 가는데 방 불은 켜져 있고 밥 먹은 그릇도 그대로 있음. 경기 전이랑 집 안은 똑같은데 나만 혼자 어디 갔다 온 상태임. 아까 시킨 적도 없는 야식 메뉴까지 골라 놨던 게 생각나서 그냥 냉장고 문 닫음.
차라리 처음부터 하나 틀렸으면 밥 먹고 끝났을 밤인데 마지막까지 살아 있어서 별짓을 다 했네. 결과 창은 다시 안 열었음. 어차피 거기 있는 1000배는 숫자고, 마지막에 찍힌 한폴낙이 내 결과니까. 충전기만 존나 성실하게 일해서 배터리는 100퍼 됐더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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